음료 광고 때문에 더 친숙한 이름, 바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입니다. 몇년 전 국내 연구진이 헬리코박터균에 의한 위암 진행 원리를 규명해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위장질환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그 정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헬리코박터는 현재 만성 위염과 위궤양, 심지어 위암의 원인이 된다고 알려진 세균입니다. 헬리코박터균이 각종 위장장애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30여년 전. 당시 호주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병리학자 로빈 워런 박사와 내과의사였던 배리 마셜 박사가 만성위염과 위궤양 환자들의 위점막 표본을 검사하던 중 이들에게서는 유난히 나선 모양의 세균이 자주 관찰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 세균이 혹시 위장질환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 세균의 이름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하지만 강산성의 위산이 분비되는 위장 안에는 어떠한 세균도 살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기 때문에 위 속에 사는 세균이 위장질환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은 무시 당했습니다. 답답해진 마셜 박사는 직접 실험을 하기에 이르렀고, 우여곡절 끝에 헬리코박터가 위장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렇다면 헬리코박터는 어떻게 강산성 위장 속에서 살 수 있을까요? 헬리코박터는 위장 안에 들어가면 먼저 위점막 안으로 구멍을 뚫고 들어가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뒤, 유레아제라는 효소를 이용해 암모니아를 만들어냅니다. 위산이 강산성이라면, 암모니아는 강염기성 물질입니다. 이 암모니아의 염기성을 이용해 위산의 산성을 중화시켜, 헬리코박터가 살기에 적절한 중성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헬리코박터에 감염된 환자들은 종종 흔히 '신물'이라고 하는 위산 대신에 중성 위액을 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위장질환은 어떻게 일으킬까요? 일단 헬리코박터가 위장 점막에 침투하면 침입 신호를 감지한 면역세포들이 위점막으로 모여들어 헬리코박터와 대치하면서 염증반응을 일으키고, 이 염증 상태가 지속되면 만성 위염으로 번지게 됩니다. 또한 헬리코박터가 위산을 중성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암모니아는 단백질을 녹이는 강알칼리성의 물질이라 점막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암모니아로 인해 중성화된 점액층 사이로 위산이 침투해 위점막 세포를 파괴하고, 이것이 심해지면 위벽에 구멍이 뚫리는 위궤양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헬리코박터가 위장 속에 있으면 100% 위장 질환에 걸릴까요? 다행인 것은 헬리코박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위장 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 3명 중 2명이 위장 속에 헬리코박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보균율이 높은 편이지만, 실제 발생률은 이보다 적습니다.
위장질환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타고난 체질과 식습관,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며, 헬리코박터는 이런 조건들과 모두 결합했을 때 위장 질환을 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위 건강을 위해서 건강한 식습관은 물론 스트레스 최소화를 위해 정신적인 건강까지 잘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